
지난 글([경쟁 분석])에서는 경쟁자가 없다는 말이 왜 위험한지, 그리고 어떻게 경쟁 우위를 증명해야 하는지 다뤘습니다. 오늘은 투자자가 IR 자료에서 가장 의심스러운 눈초리로 바라보는 장표, 바로 ‘시장 규모(Market Size)’입니다.
많은 창업자가 이 장표를 만들 때 ‘구글 검색창’부터 켭니다. “반려동물 시장 규모”, “생성형 AI 시장 전망”... 그리고 뉴스에 나온 ‘200조원’, ‘500조원’이라는 거대한 숫자를 가져와 이렇게 말합니다.
“이 시장은 200조원 규모입니다. 저희가 여기서 1%만 점유해도 매출 2조원입니다.”
하지만 투자자는 이 말을 절대 믿지 않습니다. 그 200조원은 당신의 시장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오늘은 검색된 숫자가 아니라, ‘추산된 논리’로 투자자를 설득하는 법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순서가 틀렸습니다, BM이 없는데 시장 규모가 나온다고요?
많은 예비, 초기 창업자들이 시장 규모 장표를 작성하다 보면 막막함을 느낍니다. “아직 비즈니스 모델과 가격 정책(Pricing)도 안 정해졌는데 시장 규모를 어떻게 계산하지?”
여러분의 직관이 맞습니다. 논리적으로는 비즈니스 모델과 타겟 고객이 먼저 정의되어야 시장 규모가 나옵니다.
시장규모 = P(객단가) x Target Q(목표 고객 수)
내가 얼마에 팔지(P), 누구에게 얼마나 팔지(Target Q)도 모르는데 시장 규모가 나올 리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IR 자료에 시장 규모를 넣어야 합니다. 역설적이지만, 시장 규모 추산은 아직 완성되지 않은 우리의 BM이 과연 ‘돈이 되는 사업’인지 검증해 보는 첫 번째 시뮬레이션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시장 규모 장표는 ‘경제학(통계)’이 아니라 ‘경영학(가설)’의 영역입니다.
TAM-SAM-SOM, 투자자 언어로 다시 정의하기
시장 규모를 이야기할 때 빠지지 않는 TAM-SAM-SOM, 단순히 교과서적인 정의 말고 투자자가 듣고 싶어 하는 의미로 재해석해야 합니다.

- TAM(Total Addressable Market, 전체 시장) : 우리의 ‘비전’이 도달할 수 있는 최대치(꿈의 크기)
- SAM(Serviceable Available Market, 유효 시장) : 현재의 비즈니스 모델로 현실적으로 도달 가능한 시장(우리의 무대)
- SOM(Serviceable Obtainable Market, 수익 시장) : 가장 중요, 우리 팀이 현재 자원으로 2~3년내에 확실히 깃발을 꽂을 수 있는 시장(생존 거점)
투자자는 거창한 TAM보다, “그래서 당장 어디서부터 돈을 벌 건데?”를 보여주는 SOM을 가장 유심히 봅니다. SOM이 논리적이어야 SAM과 TAM으로 가는 성장 스토리가 성립되기 때문입니다.
데이터가 없을 때 쓰는 논리 추정법, 페르미 추정
문제는 초기 스타트업, 특히 기존 시장에 없던 ‘새로운 접근’을 시도하는 기술이나 비즈니스를 준비하는 경우입니다. 당연히 참고할 만한 시장 보고서나 통계 데이터가 없습니다.
이때 필요한 것이 ‘페르미 추정(Fermi Estimation)’입니다. 정확한 답을 찾는 게 아니라, 타당한 가설을 통해 근사치를 도출해 내는 방식입니다.
특히 B2B나 딥테크 기업은 단순 인구수가 아니라, 고객이 겪는 ‘문제의 비용’을 시장 규모로 환산해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두 가지 사례로 알아보겠습니다.
Case1. 효율성의 시장 : “시간(Time)을 팝니다”

아이템 : 기업용 회의 자동 기록/요약 AI(B2B SaaS)
가격표가 없는 B2B 서비스라면, 기업의 ‘인건비 절감액’이 곧 우리의 시장입니다.
- Target(Q) : 국내 50인 이상 기업 사무직 300만 명(가설)
- Pain Point : 직장인 하루 평균 회의 2시간 → 정리 및 공유에 30분 소요(비효율)
- Cost(비용환산) : 평균 시급 2만원 x 0.5시간 = 회의 1회당 1만원 낭비
- Value & Price(P) : 우리 AI가 이 시간을 0분으로 줄여준다면? 기업은 직원 1명당 월 20만원(1만원x20일)의 이득을 봅니다. 이 중 10%인 ‘월 2만원’을 구독료로 책정합니다.
- SAM 추산 : 300만명 x 2만원 x 12개월 = 7,200억원
핵심 논리는 “우리는 기업의 낭비되는 인건비 7조원 시장 중, 10%를 솔루션 비용으로 회수하겠습니다.”입니다.
Case2. 공포의 시장 : “리스크(Risk)를 없애줍니다”

아이템 : 공장 안전사고 예방 AI CCTV(DeepTech)
일어나지 않은 일(사고)을 예방하는 새로운 솔루션은 어떻게 계산할까요? 기술 그 자체가 아니라, 고객이 느끼는 '잠재적 손실(Fear)'의 크기가 곧 시장의 크기입니다.
- Target(Q) : 중대재해처벌법 적용 대상 중소 제조 공장 5만개(가설)
- Risk Cost(잠재 손실) : 사고 발생 시 합의금, 벌금, 공장 가동 중단 손실 등을 합치면 건당 최소 8억원
- Probability(확률) : 10년에 한 번 사고가 난다고 가정해도, 공장 사장님은 연간 8,000만원의 기대 비용(손실 리스크)을 안고 있습니다.
- Value & Price(P) : 우리 AI가 사고 확률을 0%로 만든다면? 사장님은 연 8,000만원짜리 보험을 드는 셈입니다. 리스크 제거 비용의 10%인 ‘연 800만원’을 솔루션 가격으로 책정합니다.
- SAM 추산 : 5만개 x 800만원 = 4,000억원
핵심 논리는 “보이지 않는 위험을 숫자로 보여줄 때, 공포의 크기는 곧 지불 용의가 됩니다.”입니다.
💡 잠깐! “그런데 저 800만원은 진짜 받을 수 있는 돈인가요”
여기서 사용한 가격(P)은 어디까지나 논리적 추산을 위한 ‘가설’입니다. 실제 사업에서는 이 가설이 맞는지 검증하는 과정이 반드시 필요합니다.
- “경쟁사 가격을 따라 하는 게 맞을까?”
- “고객의 리스크(손실)을 기반으로 가격을 책정하는 구체적인 방법은?”
- “책정된 가격 가설을 인터뷰나 설문으로 검증하는 법은?”
이 부분은 ‘시장 규모’만큼이나 중요하고 방대한 주제라, 추후 별도의 포스팅에서 깊이 있게 다뤄드리겠습니다. 우선은 ‘고객의 고통(Pain) 비용의 10~20%’를 우리의 초기 가격 가설로 잡고 넘어가셔도 충분합니다.
결론적으로 숫자는 틀려도 되지만, 논리는 틀리면 안 됩니다.
여러분이 계산한 7,200억원, 4,000억원이라는 숫자는 틀릴 수 있습니다. BM이나 가격이 바뀌면 숫자도 바뀌니까요. 투자자도 그 사실을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투자자가 정말 보고 싶은 것은 정답이 아니라 과정입니다. “이 창업자가 자기 사업의 변수(고객 수, 빈도, 가격, 비용, 리스크)를 얼마나 구체적으로 쪼개서 구조적으로 사고하고 있는가?”
남들이 구글 검색창을 켤 때, 엑셀을 켜서 여러분만의 P(가격/가치)와 Q(고객/대상)를 정의해 보세요. 그 치열한 고민의 흔적이 담긴 숫자는 뉴스 기사보다 훨씬 더 강력한 설득력을 가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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