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팁스(TIPS) 지방 우대, '제2의 카카오'가 될 것인가 '프랑스 혁명'이 될 것인가?

다가오는 2026년, 대한민국 스타트업 생태계의 젖줄인 팁스(TIPS) 프로그램에 중대한 변화가 예고되었습니다. 변화의 배경과 관련된 의도인 수도권 과밀을 해소하고 지역 생태계를 살리려는 정부의 선한 의지에는 공감합니다. 다만, 이런 기대와 함께 현실적인 우려도 교차하고 있습니다.
이번 개편안이 단순한 지원금 퍼주기가 될지, 아니면 진정한 지역 균형 발전의 마중물이 될지. 바뀐 정책의 핵심과 그로 인해 발생할 수 있는 시나리오에 대해서 한번 생각을 정리 해 보았습니다.
[주의]
본 콘텐츠는 작성 시점의 정부의 공개된 팁스(TIPS) 관련 자료를 바탕으로 작성되었으나, 필자의 주관적인 해석과 시나리오 분석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스타트업 관계자분들의 인사이트 확장을 위한 참고 자료로 활용해 주시기 바라며, 공식적인 정책 가이드라인이 아님을 밝힙니다.
2026년, 무엇이 달라지는가? : 트랙 통합과 진입 장벽의 이중주
2026년 팁스 개편의 큰 그림은 '성장 단계별 지원 체계의 명확화'입니다. 복잡했던 트랙들이 초기, 중기, 후기로 깔끔하게 정리되면서 각 단계별 진입 요건이 강화되었습니다.
첫째, 초기 단계의 통합과 '2억 vs 1억'의 장벽

가장 많은 스타트업이 해당하는 초기 단계에서는 기존의 일반, 딥테크, 글로벌 트랙의 구분이 사라지고 '일반 팁스'로 통합됩니다. 핵심은 높아진 문턱입니다.
- 수도권 : 운영사 선투자금 요건이 2억원으로 상향됩니다.
- 비수도권 : 현행대로 1억원이 유지됩니다.
즉, 트랙은 하나로 합쳐졌지만, 지역에 따라 입장권 가격이 2배나 차이가 나게 된 것입니다.
둘째, 중기·후기 트랙의 스케일업(Scale-up)

성장 단계 기업을 위한 트랙은 중기와 후기로 나뉩니다.
- 중기(스케일업 팁스) : 기존 트랙을 재정비하여 스케일업 단계를 지원합니다.
- 후기(글로벌 팁스) : 기존 글로벌 트랙이 변경된 것으로, 체급이 확 커졌습니다. 해외 VC로부터 100만달러(약 13~14억 원) 이상의 투자를 유치해야 지원할 수 있는 대신, R&D 및 사업화 자금을 최대 50억원까지 지원합니다.
이렇게 전체 파이가 커지고 체계화된 것은 환영할 일이나, 초기 스타트업 입장에서는 당장 눈앞의 '2억원(수도권 요건)'이라는 허들이 가장 큰 현실적 압박으로 다가올 것 같습니다.
시나리오 : 서울의 'Team S'는 왜 대전행 기차를 탔나?
이러한 정책 변화가 실제 스타트업 현장에서는 어떤 의사결정을 만들어낼까요? 서울 강남에 위치한 가상의 AI 스타트업 'Team S'의 시나리오를 가정해 보겠습니다.
- [상황] 카이스트 석박사 출신으로 구성된 Team S는 이미 1억 원의 시드 투자를 확보했습니다. 기술력은 충분하지만, 2026년 바뀐 규정 탓에 서울에 계속 있으려면 1억 원을 더 구해와야(총 2억) 합니다.
- [딜레마] VC들을 만나 추가 1억 원을 확보하려면 최소 3~6개월의 시간과 리소스가 더 필요합니다. 당장 개발에 집중해야 할 시기, 이 시간은 치명적입니다.
- [결정] Team S는 전략을 수정합니다. "무리해서 투자금 1억을 더 구하러 다니느니, 차라리 연구소 본점을 대전이나 부산으로 옮기자."
이것은 단순한 가정이 아닙니다. 자금 압박을 받는 초기 기업들에게 지방행은 더 이상 선택이 아닌, 팁스라는 생명줄을 잡기 위한 '경제적 합리성'에 기반한 필수 전략이 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기회인가, 생존을 위한 피난처인가?

정부는 우수한 기업들이 지방으로 내려가 생태계에 활력을 불어넣는 '메기 효과'를 기대할 것입니다. 하지만 현장의 시각으로 보았을 때, 여기에는 몇 가지 우려스러운 가설(Hypothesis)이 존재합니다.
① '확률 게임'이 아닌 '생존 게임'에 의한 비자발적 이주
과거의 지방 이전이 "가면 혜택을 받는다"는 플러스(+) 요인이었다면, 2026년의 이전은 "안 가면 지원 자격이 없다"는 마이너스(-) 회피 요인이 큽니다. 자발적인 동기가 아닌, '생존을 위한 이주'가 늘어날 것으로 추정됩니다.
② '무늬만 지방 기업'의 고도화
물론 정부도 바보는 아닙니다. 단순한 주소지 이전(페이퍼 컴퍼니)은 현장 실사와 카드 내역 추적 등을 통해 엄격히 걸러낼 것입니다.
하지만 기업들 역시 진화할 것입니다. 서류 조작 같은 얕은 수가 아니라, 실제 핵심 개발팀 일부를 지방에 상주시키는 방식으로 요건을 완벽히 충족할 것입니다. 팁스 자금이 수억 원에 달하는 만큼, 지방 체류 비용을 감당하고도 남는 장사이기 때문입니다. 문제는 "과연 팁스 기간(2년)이 끝난 후에도 이들이 그곳에 남아 있을까?"라는 점입니다.
역사가 증명하는 '강제 이식'의 한계

"기업을 옮기면 사람도 따라가고, 생태계가 살아날까?" 이 질문에 대해 국내외 사례들은 다소 비관적인 답을 내놓고 있습니다.
① 카카오의 제주 실험과 '인재의 벽'
카카오의 본사 제주 이전은 혁신적인 시도였지만, 결국 핵심 사업부와 인력 대부분은 판교에 자리 잡았습니다. 천혜의 자연환경과 세제 혜택도 '개발자 채용난'이라는 현실의 벽을 넘지는 못했습니다. 건물은 옮길 수 있어도, 인재 네트워크와 인프라는 옮길 수 없다는 것을 보여준 대표적인 사례입니다.
② 일본의 '지방 창생' 실패 (위성 오피스의 한계)
우리보다 앞서 소멸 위기를 겪은 일본 역시, 도쿄 기업이 지방으로 이전하면 파격적인 세제 혜택을 주는 정책을 펼쳤습니다. 그러나 도쿄 기업의 완전 이전 비율은 1% 미만에 그쳤습니다. 혜택을 노리고 만든 지방의 '위성 사무실(Satellite Office)'조차, 현지 채용보다는 본사 파견직들이 잠시 머무는 공간으로 전락했습니다. 프로젝트나 지원금이 종료되면 썰물처럼 빠져나가는 현상이 반복된 것입니다.
프랑스 '라 프렌치 테크'의 성공 방정식

그렇다면 성공 모델은 없을까요? 프랑스의 스타트업 육성 정책인 '라 프렌치 테크(La French Tech)'에서 힌트를 얻을 수 있습니다. 프랑스는 파리 기업을 지방으로 억지로 보내는 '이식(Relocation)' 전략 대신, '현지 육성(Home-grown)' 전략을 택했습니다.
핵심은 '특화(Specialization)'와 '인증(Accreditation)'
프랑스 정부는 전국 13개 주요 도시를 '프렌치 테크 허브'로 지정하고, 각 도시마다 확실한 특화 산업(Cluster)을 부여했습니다.
- 낭트(Nantes) : 제조업과 디지털을 결합한 PropTech, Manufacturing 특화 도시로 육성
- 보르도(Bordeaux) : 와인 산업 기반의 HealthTech, FoodTech 집중 지원
이들은 "파리 기업이 내려오면 우대해 줄게"가 아니라, "낭트에서 창업한 제조 스타트업을 파리 기업만큼 대우해 줄게"라는 접근을 했습니다. 각 지역의 산업적 DNA에 맞는 씨앗을 심고 키웠기에, 지원금이 끊겨도 기업들이 떠나지 않고 자생적인 생태계를 구축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이삿짐' 싸기 전에 '판'부터 깔아야 한다
2026년 팁스 지방 우대 정책이 성공하려면, 단순히 1억 원의 진입 장벽을 낮추는 것만으로는 부족합니다.
첫째, '백화점식 나열'이 아닌 '확실한 특화'가 필요합니다. 프랑스처럼 각 지자체가 우리 지역이 가장 잘할 수 있는 '필살기 산업' 하나를 정하고, 그 분야의 기업만 집중적으로 우대해야 시너지가 납니다.
둘째, '정책의 일관성(Consistency)'이 담보되어야 합니다. 지자체장이 바뀔 때마다 지역 전략 산업의 간판이 바뀌는 상황에서는, 그 어떤 기업도 10년 대계(大計)를 가지고 내려갈 수 없습니다. "정권이 바뀌어도 이 도시는 바이오만 판다"는 신뢰가 전제되어야 합니다.
내년 팁스 개편안이 단순한 '주소지 옮기기 게임'으로 변질되지 않으려면, 정부와 지자체의 역할은 '심판(요건 검사)'을 넘어 '설계자(생태계 조성)'로 진화해야 합니다. 서울 기업들이 잠시 쉬어가는 정거장이 아니라, 진정한 유니콘으로 도약하는 '전초기지'가 되기를 진심으로 응원합니다. 이를 위해 필요한 것은 정교한 '설계'입니다.